지난 10월, 런던에서의 한달 어학 연수를 마친 뒤 나는 영국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먼저 수도인 런던을 시작으로 에딘버러, 뉴캐슬, 요크 세 도시를 가 보았는데, 사실 나는 유럽 여행 하려면 어디 갈래? 라고 했을 때 “독일도 오스트리아도 스위스도 다 필요없고 나는 무조건 영국이지” 할 정도로 평소 영국이란 나라에 대해 호의적이고 왕과 왕비가 나오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도 무척 좋아하는 편이어서, (물론 언어만 봐도 독일어, 프랑스어보다 영어가 더 친숙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녀온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여행이었다. 어학원 근처가 사람들이 몰리는 번화가 일대로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쪽과 가깝다보니 수업이 끝난 뒤엔 언제든 가 볼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곳이 되어버렸더랬다. 2017년 봄에 런던에 잠깐 가족여행을 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가서 혼자 “반갑다. 너 아직도 여기 있구나~” 하며 고향에 온 것 같은 아련한 기분을 먼저 느껴보기도 하고…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빅벤과 런던아이, 타워브릿지는 언제 봐도 질리지가 않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물론 빅벤은 지금 공사중이지만 공사중인 빅벤의 조명이 오히려 더 밝고 반짝거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학원에서 소셜 프로그램으로 신청한 애프터눈티와 웨스트엔드 뮤지컬들도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다. 런던 여행은 뭐니뭐니 해도 기숙사 근처에서 2층버스를 타고 로드 트립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2층버스 위로 올라가 맨 앞자리에서 경치를 구경하며 종점까지 가는 그 기분이란! 버스는 칼레도니안 역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주욱 가다 보면 종착역이 런던 브리지여서 그 근처 일대인 사우스워크 대성당, 버로우 마켓, 세인트폴 대성당, 테이트 모던까지 다 구경할 수 있었다. 남들은 런던아이랑 타워브릿지가 그렇게 좋았다는데 나는 밀레니엄 다리에서 바라보는 세인트폴의 전경이 너무나도 좋아서 낮시간, 저녁시간 달리해서 몇 번을 가서 보았는지 모른다.
미세먼지 가득한 우리나라와 다르게 날씨가 다 했던 영국. 관광명소로 다들 가는 버킹엄궁과 그린파크도 좋았지만 드넓게 펼쳐져서 하루종일 구경했던 하이드 파크와 캔싱턴 팰리스, 그리고 햄스테드 히스와 캔우드 하우스 등 자연 속에서 영국의 옛것을 느낄 수 있었던 점도 너무 좋았다.
영국에서 약 두달을 머무르다 보니 런던에만 있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한달 어학원 연수를 마치고 며칠 뒤 에딘버러와 뉴캐슬, 요크를 가기로 했다. Train Line 이라는 기차 어플을 이용해서 시간별로 요금이 다르기에 적당한 시간과 가격을 골라 결재했는데, 가격이 저렴한 만큼 좌석이 지정되지 않아 사람이 혼잡한 시간이 아니라면 충분히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오후 늦게 도착해 웨이블리역 출구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석양과 스콧기념탑에 한번 감탄해 주고.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서 일찌감치 거리 조명을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춰 켜 둔 것도 멋지고 좋았지만, 역 근처에 마련된 펍에서 저녁에 노래를 들으며 마시는 맥주는 혼자 온 게 아까울 정도로 낭만적인 경험이었다.
현대식 건물이 많은 런던에 비해 돌로 된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더 중세스러웠던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향기를 물씬 풍기며 나를 반겨주었는데, 스코틀랜드 전통의상과 악기를 들고 길거리 공연을 하는 아저씨들부터 에딘버러성에서 본 운명의 돌, 조앤롤링의 코끼리카페와 해리포터의 배경이 된 상점거리까지 동화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런던에서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가지 못해 아쉬워 했었는데 그 아쉬움을 날릴 정도로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뉴캐슬과 요크도 비슷한 분위기이긴 했지만 뉴캐슬은 역근처에 차이나 타운이 형성되어 그런지 중국인들이 많았고 (심지어 중식이나 타이식 음식점도 있었다.) 관광지의 면모로서 성과 성곽들의 잔해와 중세의 분위기가 더 짙게 남아있는 도시는 요크였다. 그리고 온갖 사람들이 다 몰려있어서 어지러운 느낌이었던 런던보다는 로컬 분들이 많고 조용해서 관광하기 좋았달까. 다만 관광명소의 입장료가 대부분 무료였던 런던과는 달리 입장료가 따로 있어서 비용적인 부분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요크 민스터와 요크 뮤지엄, 요크 캐슬 뮤지엄 등등 볼거리가 다양해서 아깝지 않고 알찬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거기다 클리포드 타워에 올라가 바라 본 요크의 전경과 오래된 영국 분위기로 가득한 솀블즈 거리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영국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거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때문에 다시 런던으로 왔다. 런던의 웬만한 곳은 다 돌아봤다고 생각이 되어서 귀국을 며칠 앞두고는 쇼디치 근처의 브릭레인마켓과 콜롬비아 플라워마켓을 돌아보았고 리젠트 스트릿과 옥스포드 스트릿, 피카딜리서커스 근처에서 크리스마스 조명과 마켓의 분위기들을 즐겼다. 영국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시즌은 처음이라서 조명이든 분위기든 하나하나가 다 새롭고 신기했지만, 10월부터의 긴 시간들을 마음에 새기며, 내년 브라이튼행을 기약하고 눈과 카메라에 하나하나 담은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