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캔터베리에서의 첫 날
7/20일 새벽 인천에서 카타르 항공기를 타고 2시간 정도 도하에 머물다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셔널 익스프레스를 타고 곧장 빅토리아 스테이션으로 달려갔다. 내셔널 익스프레스를 타면서 느낀 건 우리나라 고속버스보다 훨씬 편하다는 것이었다. 왜 선진국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런던은 굉장히 큰 건물들이 들어서있다기보단 아기자기한 옛날 건물들과 좁은 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런던 동쪽에 위치한 켄터베리
켄터베리는 잉글랜드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정말 작다. 언더그라운드도 없다. 하지만 아기자기해서 좋은 것 같다. 켄터베리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 부서지고(물론 한 번 쓰고 버릴 생각이었지만 너무 빨리 부서져서 당황했다.)비도 오는 바람에 짜증 반 피곤 반 상태에서 구글 맵을 보니까 나침반이 엉뚱한데 표시가 되어있어서 그냥 길가다 보이는 영국인 누나(?)한테 길을 물어봤다. 그러더니 자기도 마침 가는 방향이 비슷한데 길을 알려주겠다면서 자기보고 따라오라고 했다. 근데 내가 너무 지친 상태라서 택시 타면 얼마냐고 하니까 얼마 안 할거 같다면서 택시 승강장까지 흔쾌히 바래다줬다. 그러더니 택시기사한테 얼마냐고 알아서 물어봐 주기까지 했다. 근데 기사가 6파운드 불러서 내가 그냥 걸어가겠다고 했다.(알고 보니 걸어서 5분 정도 되는 거리였음.)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학교 기숙사에 도착하니 스위스에서 온 바이올라, 프랑스에서 온 마리아, 엘리스가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같은 SHSE에 다니는 애들이었는데 올해 스무살이 된 바이올라를 제외한 나머지 프랑스 친구들은 18살이었다. 그런데도 영어 실력은 나보다 상당했던 걸로 기억된다. 기숙사는 LANFRANC이란 곳이었는데 18살 이상 그러니까 성인부터 지낼 수 있는 곳이다. 식당 바로 옆에 있는 기숙사는 성인이 아닌 청소년(?)들만 출입을 할 수가 있다. 아무래도 내가 살았던 곳이 다른 기숙사에 비해 조용했던 것 같다. LANFRANC은 모든 방이 EN-SUIT ROOM이고 애들이 철이 들어서 그런지 대체적으로 조용했다. 포터도 있어서 유심칩도 받을 수 있었고 물이나 전기세에 대한 걱정도 전혀 없었다. 부엌은 하우스 안에 사는 6~7명 되는 학생들끼리 쉐어를 했는데 우유, 식빵, 씨리얼, 누텔라 등 간단한 아침은 주마다 제공해줬다. 근데 난 좀 많이 먹는 편이라 머핀 같은 거 다 떨어지면 그때그때 말해서 먹고 그랬다. 한 가지 안 좋았던 점은 세탁비용이 2.3파운드였다. 한 번 하는 데만 그만한 비용이 드니 세탁 횟수를 줄여야만 했다.
한 달 동안 지냈던 LANFRAC(기숙사)
2. 수업하면서 느낀 점
수업 중에는 집중(?)하느라 따로 찍어둔 사진이 없다. 솔직히 한 달만 단기로 공부하는 거라서 수업보다는 방과 후에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애들이랑 어울리는 것에 목적을 뒀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괜찮았던 내용은 발음에 대한 교정과 악센트 및 책에는 따로 나오지 않는 표현들이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악센트가 없어서 그런지 발음이 꽤 정확하다고 생각했는데도 얘들은 악센트가 없으면 알아듣기 혼란스러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창기에 상대방으로부터 ‘Pardon?’ 을 엄청나게 들었다. 발음을 대충하고 악센트를 주면 브리티시 애들이 대충 때려맞춰서 의미전달이 되는데 악센트를 우리나라처럼 밋밋하게 해버리는 경우엔 의미전달 자체가 되지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뭐 잘하지는 않지만 의식하고 말하려고 노력중이다.
쉬는 시간에는 모두 밖에 나와 친구들이랑 얘기를 나눈다
또한 매주 월요일에 시험을 치른 뒤 1:1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수업을 하면서 느낀 건 배우는 입장이니까 듣는 시간이 당연히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옆에 있는 파트너와 말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곳에서 공부했던 기간이 7월 말부터였는데 유럽권 학생들 또한 2주 혹은 4주로 단기공부를 하러 많이 왔었다. 난 추가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고 하루 3시간 정도 수업을 들었지만 얘네들 같은 경우는 단기로 왔기 때문에 수업이 보통 5시간이었는데 그 친구들 말로는 오후에 하는 수업이 영어실력 향상에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난 워킹비자로 왔기 때문에 런던에서의 생활비도 고려해야만 했다.
식당 (CANTEEN)
3. 학원 생활
기숙사에서 지내면 아침과 점심은 공짠데 학원에서는 5분거리지만 집에서는 한 20분 되는 거리라서 아침은 거의 거르는 편이었다. 솔직히 말해 고기 이외의 음식은 입에 전혀 맞지 않았다. 입맛에 맞지 않는 애들은 거의 런치메뉴를 따로 사먹거나 웨이트로즈에 가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하지만 난 열심히 먹으러 다녔음) 배식은 메인요리 빼고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가져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당히 눈치보면서 원하는 만큼 챙길 수 있었다. 난 아침먹으러 식당까지 오기 귀찮아서 머핀이나 브라우니, 특히 과일같은 경우는 염치없게 두 세개씩 받아서 다음 날 아침으로 먹기도 했다.
4. 방과 후 액티비티
다른 학원과 마찬가지로 SHSE에서도 매일동안 방과 후 액티비티가 따로 있었다. 참여는 자유며 펍이나 볼링을 제외한 모든 참가비는 공짜다. 그래서 난 매주 참가했다. 처음 2주 동안은 같은 반에서 친해진 스페인, 이태리, 프랑스 애들이랑만 놀았는데 얘네들이 간 뒤로 매일매일 액티비티에 참가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려고 아둥바둥거렸다. 혼자 집에 있는 것 보단 친구들이랑 얘기도 해가면서 지내는게 훨씬 더 능률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틈만 나면 놀러다닌 것 같다.
금요일만 되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들 때문에 어느 펍을 가더라도 항상 북적북적 거린다.
펍 다음으로 좋아했던 액티비티는 매주 금요일마다 할 수 있는 스포츠 액티비티였다. 2시간 동안 풋살, 농구, 배드민턴, 배구, 크리켓 등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하면 늦은 저녁까지도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풋살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스페인은 여자애들도 축구를 잘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와 달리 여자애들이 운동에 굉장히 적극적이어서 오히려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크리켓 하기 전 배 채우는 중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켄터베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의 투어를 할 수 있는데 윈저 성, 그리니치 천문대, 놀이공원, 런던, 브라이튼, 옥스퍼드, 캠브리지 중에 정해진 곳만 갈 수 있었다. 런던은 매주 공지가 되었지만 윈저 성이랑 그리니치는 내가 있는 동안 한 번 밖에 공지가 되는 것을 못 봤다. 한 번은 날씨도 너무 좋고 해서 여행을 가고 싶단 생각에 옥스퍼드를 다녀왔다. 가격은 차비까지 다 포함해서 20파운드였었고 기숙사에서 지내면 점심도 공짜로 나왔었다.
CHRIST CHURCH(OXFORD)
옥스퍼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사진 속 건물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답답했던 건물 안을 빠져나오자 넓은 광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해리포터 촬영지기도 했던 이 곳에 들어오려면 입장료를 8파운드 냈어야했는데 학원 네임카드를 보여주면 2파운드 할인해 준다. 옥스퍼드에서 유일하게 지출한 비용이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 외에도 옥스퍼드 시내를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었는데 시간상 따로 가보지는 못했다. 전망대 비용은 25파운드였던 것 같다. 런던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니 언제 기회가 되면(아마 비스터 빌리지 갈 때) 들릴지도 모르겠다.
5. 캔터베리 관광지
켄터베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소가 바로 켄터베리 대성당이다. 군대에서 갔던 성당이랑은 규모부터가 남달랐다. 켄터베리 대성당은 영국을 대표하는 성당 중 하나여서 그런지 입구에는 항상 단체로 관광하러 온 사람들이 북적댄다. 이 곳 역시 방과 후 액티비티로 매주 수요일마다 박물관과 대성당 중 자기가 원하는 곳을 선택해서 갈 수 있다.
켄터베리 대성당 입구와 성당의 모습
대성당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성당의 내부 모습은 한 마디로 웅장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같이 다니던 유럽 애들은 별 감흥이 없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서양 건축양식이 자기나라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중세 양식보다는 오히려 동양의 한옥이나 궁궐이 더 신기하다고 한다. 켄터베리 대성당 외에도 성의 흔적만 남은 성벽이나 사원 등도 차례로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켄터베리 대성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따로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성당에 올 때면 성가대의 노래소리나 신부님들을 보면 마음이 그냥 평온해지는 것 같아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켄터베리 대성당 외에도 강에서 카누를 타면서 켄터베리의 역사가 담긴 곳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베네치아 느낌이 났던 캔터베리에서 카누 타기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이태리 베네치아 분위기도 조금 났던 것 같다.(실제로 뱃사공 중 한 명은 이태리 사람이라 더 그랬던 듯) 역사에 대한 가이드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날씨가 정말 최고였던 탓에 모든 모습들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30분 정도면 저런 가이드가 다 끝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켄터베리를 온다면 꼭 한 번 체험하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켄터베리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러 숙소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눈에 들어왔던 곳이 바로 저 SUN HOTEL이다. 숙소가 지어진 시기가 무려 1503년 부터라고 하니 굉장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SUN HOTEL
실제로 외관은 저렇게 오래 되어보이지만 막상 실내로 들어가면 현대식인 인테리어가 대부분인 반면에 이 곳은 실내도 전부 옛날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려는 듯한 흔적이 보였다. 현대식 건물이 위생적이고 좋다고는 하지만 이런 전통을 고수하는 것 또한 관광객인 나에겐 흥미롭게 다가온다.
독특했던 건물
한 번은 펍에 가서 친구들이랑 술 한 잔하고 2차로 집에 가서 한 잔 더하려고 집에 가는 중에 저 건물을 보고 내가 술이 취한 줄 알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건물 외관 디자인 자체를 저렇게 독특하게 한 것이란다. 책 파는 서점인데 저 외관 덕분에 관광객한테는 꽤 유명하다고 한다.
6. 단기 어학연수 후기
조용하고 향토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켄터베리에 오는 것을 추천한다. 런던에서도 그리 멀지 않으니 런던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도 1박 혹은 1박 2일 여행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막상 나도 켄터베리에 오게 됐을 때 반신반의한 상태로 오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들과 많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도 이 곳 켄터베리였고 런던에서의 생활을 준비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켄터베리에서 오히려 방언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했던 걱정도 기우였고 오히려 런던보다 현지인과 대화를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현재 거주 중인 곳에는 관광객들도 많고 일하는 곳에도 현지인만큼 유러피언들이 많다. 켄터베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학생들은 대략 8명 정도였던 것 같다. 한인비율이 그리 높은 편도 아니었고 다들 한국인이라서 어울리고 싶어한다기보다 공부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아이엘츠나 캠브리지에 관한 정보 공유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교나 지역 모두 고려했을 때 켄터베리는 어학능력 향상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런던처럼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한국인도 대부분 공부를 목적으로 와서 외국인들과 항상 함께 얘기를 나누는 편이다. 정말 어학연수만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몇 개월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